튀니지와 이집트 혁명은 혁명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진 아랍에 커다란 자각의 계기를 주고 있다
구프랜 만소르(Goufrane Mansour)/연구공간 L 옮김
- 연구공간 L
출처: http://www.guardian.co.uk/commentisfree/2011/feb/03/arab-feel-good-revolutions-egypt-tunisia
※ 구프랜 만소르(Goufrane Mansour) 레반논 태생으로, 철학자이자 언어학자이며 프리랜서 작가이다. 현재 런던에 살고 있다.
튀지니에서 시작되었고 지금 이집트를 휘감고 있는 아랍의 자각이 서방 정권들을 비롯해 세계에 놀라움을 주고 있다. 그런데 정말 놀란 이들은 지역의 독재자들이나 정권보다도 아랍 사람 자신들, 나를 포함한 모든 세대의 남성들과 여성들일 것이다. 지금까지 아랍 사회에서 아랍은 스스로 변화하고 운명을 결정할 능력이 없다고 암묵적으로 받아드려져 왔다. 아랍은 첫 천년의 아랍 정복자들과 살라딘의 승리 이후 패배, 쇠퇴와 흥성을 겪었으며 이 숙명이 계속될 것이라고 이야기됐다.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것은 커다란 정치적 중요성을 갖는다. 어떤 형태로든 이집트에 정치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며, 이는 전 지역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런데 이 혁명은 또한 문화적이다. 아랍 자체의 인식과 그들이 성취할 수 있는 것에 있어서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나는 레바논 사람으로서 아랍 민족주의의 성쇠를 봤다. 1960년대 이상주의에 의해 추동되어, 우리는 나세르*를 쿠바에서부터 베트남으로까지 세계를 가로질러 퍼진 이 자유와 정의, 존엄성의 가치를 실현할 화신으로 봤다. 그러나 그의 몰락과 1967년 6일간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에 의해 패배한 이후, 통합의 꿈과 자기결정권, 민족주의는 점차 사라졌다.
1990년대 후반이 지나고 나서야 강력하고 고무적인 인물인 하산 나스랄라**가 아랍에 나타났다. 그는 레바논 시아파 저항단체인 헤즈볼라***의 수장이었다. 25년 이스라엘의 남부 레바논 점령이 끝나고, 그는 중동의 가장 명성이 있는 인물이 되었다. 그러나 아마도 헤즈볼라의 시라아 성향과 이란과의 친밀한 관계, 레바논의 복잡한 정치 때문에, 헤즈볼라의 승리들은 아랍의 사기를 높이는 데 실패했던 것 같다.
독재적인 지도자들과 군주들, 독재자들의 결합은 우리 아랍이 자유와 정의, 창조성과 민주주의가 널리 확산된 나라들에 속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신념을 흔들어 놓았다. 우리는 이들이 아랍 본래의 특성이 아니라고 믿었다. 그러나 우리는 대개 아랍의 독재자들과 석유, 보수주의, 종교적 근본주의, 문맹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극단적인 소비주의(부르카 아래에 걸치는 그 구찌 명품)로 유명해졌다.
최근의 저널리스트 사미르 카시르****가 쓴 주목할만한 에세이 <Being Arab>에서 사용한 표현을 쓰자면, 이것은 “아랍의 문제들(Arab malaise)”이다. 그것은 우리의 자존심을 조금씩 갉아먹으며 우리의 핵심, 역사 심지어 아랍어와의 관계까지 파고든다. 레바논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퓨샤(fusha)를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왜냐하면 그런 무능의 정도가 누군가가 얼마나 서구화되었는가에 대등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람들이 열망하는 목표다. 부모들은 학교 때문에 아랍어를 버리고 그들의 자식들에게 영어나 프랑스로 말한다. 그 결과 많은 레반논 젊은이들에게 아랍어는 가슴의 언어가 아니게 되었다. 오로지 TV 뉴스나 아무도 읽지 않는 오래된 책들에 있는 형식적이고 인간미 없는 언어가 되었다.
그래서 가장 명성 있는 아랍국이면서 한때 범아랍주의의 리더였던 튀니지와 이집트의 혁명은 모든 아랍에 놀랄만한 자각의 계기이며 우리 자신을 인식하는 데 있어 지진이 일어난 것 같은 변화다. 내가 분신한 튀니지의 청년 모하메드 부아지지가 단지 잔혹한 알리 정권의 또 다른 희생자였다고만 생각한 것은 정말 잘못된 생각이다. 나는 그가 다가올 혁명의 영웅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아랍의 문제들에 사로잡혔지만, 벤 알리가 튀니지를 떠나는 그날까지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지 못했다. 내가 자신을 희생한 이집트인들에게 안타까움을 느꼈던 일은 정말 잘못된 것이다. 며칠 전까지 계속된 나의 불신은 정말 잘못된 것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이집트 혁명은 또한 우리에게 카시르가 명확하게 예견했던 아랍에 관한 무언가를 가르쳐준다. “인터넷은 새롭지만 커지고 있는―이들의 지향이 어떠하든―엘리트와 위성 채널들에게 특권이 될지도 모르지만, 인터넷은 시각자료와 정보문화에 대한 접근을 용이하게 해줄 것이며, 그리하여 복합적인 전지구적 지형 속에서 아랍세계를 생각하게끔 해줄 것이다. 아랍의 정체성에 대한 걱정스런 시선과 반대로, 이것은 문화적 전지구화가 아랍 문화에 커다란 기회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제 그렇게 되었다. 요즘 아랍의 모습에 불현듯 기분이 좋아진다.
* 가말 압델 나세르(Jamāl, Abd an-Nāsir): 이집트의 군인·정치가. 반둥회의(아시아-아프리카회의)에 출석하여 적극적인 중립주의·비동맹주의 외교정책을 추진했고 수에즈운하의 국유화를 선언, 수에즈전쟁이 일어났으나 국제여론의 지지로 이를 해결해 아시아·아프리카의 지도자가 되었다.
** 하산 나스랄라(Sayyid Hassan Nasrallah): 1960년생. 레바논의 정치적이며 준군사 조직 헤즈볼라의 현직이자 세 번째 사무총장이다. 1992년 이스라엘이 아바스 알무사위를 암살한 후 조직의 지도자가 되었다.
*** 헤즈볼라(Hezbollah): 아랍어로 ‘신의 정당’을 뜻하고 이슬람 지하드라고도 불린다.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에 맞서기 위해 시아파 종교지도자 이슬라믹 아말(Islamic Amal)과 레바논 지구당인 다와 파티(Dawa Party)가 합쳐 창설되었고, 활동 본부는 레바논 동부쪽 비카에 위치한다. 이란으로부터 활동자금을 지원받고 있으며 시리아로부터 무기를 지원받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 사미르 카시르(Samir Qassir): 레바논 일간지 <안 나하르(An Nahar)> 기자로 반(反) 시리아 노선을 걸어왔다. 그는 2005년 6월 2일 베이루트의 자택 앞에서 승용차에 설치된 폭탄이 폭발하면서 숨졌다. 그가 사망하기 직전 집필한 마지막 칼럼도 시리아의 집권 여당인 바트당의 정책을 강력히 비판하는 내용으로, 시리아 정보기관은 그를 줄곧 감시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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