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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다라Daraa의 오마리 사원에서 군대의 학살이 있기 하루 전인 3월 22일 가디언지에 게재된 옴마르 압둘하미드의 글이다. 3월 15일부터 점화되기 시작한 시리아 봉기가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혁명을 이끌고 있는 주체들은 누구인지에 대한 서술이 인상적이다. 규모로는 아직 이집트, 튀니지와 같은 전면적 혁명으로 보기 어렵지만, 이제 막 시작된 시리아에서의 대중봉기가 가지는 의의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이 글이 나온 다음 날 새벽 오마리 사원에 모여있던 시위대와 인근 지역의 다라 시민들을 군대가 무차별 총격으로 학살한 사건이 있었지만, 시리아 혁명의 기운은 이 글에서 저자가 예상했듯이 오히려 더 거세졌다. 오늘(3월 24일) 시리아에서는 '존엄의 금요일' 시위가 예고되어 있다. 두려움의 장벽을 넘어선 시리아인들이 민주주의와 해방에 대한 열망으로 시리아 전역을 뒤덮어 40여년 간의 독재정권을 분쇄하고 새로운 세계를 구성하는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기를 바란다. -연구공간 L 
출처:
http://www.guardian.co.uk/commentisfree/2011/mar/22/syrians-protests-syria-revolutionary-spirit

지난 금요일 ‘분노의 날’은 흐지부지 막을 내렸다. 그러나 다라에서의 시위는 지금 시리아의 혁명적 기운이 고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암마르 압둘하미드(Ammar Abdulhamid) / 연구공간 L 

2011년 3월 22일


지난 6주간의 시간은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2월 초에 나는, 점점 더 늘어나는 대중혁명 발생국가의 목록에 다음번엔 시리아가 올라갈 것 같은지 질문을 받았다. ‘Comment is free’란에 기사의 형식으로 한 나의 대답은 본질적으로 “아직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망명 중인 반대파 인사가 2월 5일에 호소했던 “분노의 날”은 흐지부지 끝나버렸다. 주된 이유는 당시 현장에서 구축되고 있던 네트워크가 그러한 요구에 응하기에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활동가들은 시리아 전역에 지지자들의 네트워크를 확실하게 구축하고, 각각의 네트워크 내부와 네트워크들 간에, 그리고 시리아와 전 세계에 존재하는 지지자들 사이에 분명한 소통 전략과 방법에 대한 합의를 공고하게 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했다.

시리아 사회 내 특정 부문들의 관심사 뿐 아니라 국제 사회의 관심사를 다루기 위해 적합한 메시지를 만들어내는 것은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다. 특히나 이슬람주의자들이 미래의 민주화된 시리아에서 수행하게 될 잠재적 역할에 관한 메시지를 만들어내는 것은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러한 논점들이 이메일과 다양한 페이스북 집단을 통해 인터넷에서 논의되고 있었다. 논의의 주된 요지는 혁명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인가가 아니라 혁명이 언제 일어날 것인가였다. 나 자신을 비롯한 일군의 사람들은, 국내의 활동가들이 네트워크를 조직하고 메시지를 정식화할 수 있도록 시간을 줘야 하므로 적어도 여름 중반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쪽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더 조바심을 냈다. 어떤 이들은 리비아에서 만일 가다피가 승리할 경우, 시리아인들에게 혁명을 호소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 염려했다. 그래서 그들은 더 빨리 움직여야 한다고 압박했다. 3월 15일 이후 시리아가 혁명적 봉기의 한가운데로 휩쓸려 들어간 것을 보면, 분명 논쟁에서 승리한 쪽은 후자이다.

그런데 논쟁을 하던 사람들은 누구였는가? 또한 혁명을 일으킨 사람들은 누구인가?

이들은 하나의 특정한 집단이나 조직, 정당이 아니었다. 망명 중이거나 국내에 있는 몇몇 반체제 인사들도 아니었다. 이들 대부분은 시리아에 살고 있는 십대, 이십대의 젊은 청년들이었다.

이 젊은 혁명가들은 인터넷에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시리아와 외국에 있는 기존의 반체제 인사들 및 민주화 활동가,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혁명을 훌륭히 수행해낸 혁명가 집단 가운데 멘토와 조언자들을 구하기 전에, 행동을 해야 할 때라는 결정을 이미 내렸다. 각각의 활동가 집단들은 자신들의 확립된 세계관과 우선순위에 기반하여 커다란 존경심과 연대의식을 느낀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이끌렸다. 그러자 그들은 서로 소통했고 무엇을 우선순위에 둘 것인지에 대해 합의했다. 이들은 현장의 지도자들이었다 - 결국 이것은 그들의 혁명이다.

어떤 이들은 여전히 시리아의 현 상황이 너무 국지화되어 있고, 전면적인 혁명이 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대면하고 있는 이 정권을, 이러한 사태가 전개되기 직전 바샤르 알-아사드가 월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관련링크)에서 보여준 독선적인 태도를 생각해보라. 그는 자신의 정권이 대중들에게 인기가 있고 풀뿌리 민중들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서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을 휩쓸고 있는 혁명적 봉기에 끄떡없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이러한 것들을 생각해보면 초기 국면이긴 하지만 작금의 상황을 혁명이라 부르는 것은 과장이 아니다.

상황이 어떻게 계속 전개될 것인지는 모두 짐작만 할 뿐이다.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해졌다. 시리아 같은 경찰국가에서 사람들이 두려움의 장벽을 부수고 거리로 나오기 시작하면, 폭력진압은 그들의 결의를 굳게 해 줄 뿐일 것이라는 것 말이다. 며칠 전 다라의 한 시민이 아랍 뉴스와의 통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오직 하나의 요구사항밖에 없습니다. 자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자유를 쟁취할 때까지 계속해서 그것을 좇거나 쟁취하기 위해 싸우다 죽을 것입니다.”

다라의 사람들에게 자유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다라시내에서 전前 독재자 하페즈 알-아사드의 입상이 파괴되고, 다라시내 벽에 있던 아사드의 모든 사진이 훼손되거나 ‘아사드 퇴진’이라는 낙서로 바뀌었으며, 주지사의 사무실이 불에 타고, 아사드의 사촌 라미 마클루프Rami Makhlouf가 소유하고 있는 통신회사의 건물이 불탔다는 것을 생각해보라. 당신과 내가 짐작하는 것만큼이나 [다라 사람들이 요구하는 자유는] 급진적인 것일 것이다.

다마스쿠스 인근 마다야Madaya라는 마을의 시위대들이 3월 20일 벌인 작은 시위에서 이렇게 외쳤을 때,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짐작을 했음에 틀림없다. “국민은 정권퇴진을 원한다.”

아사드가 담벼락의 낙서에 벌벌 떨기만 하고 이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위의 구호를 제창할 것이다. 튀니지와 이집트에서만큼 사태가 빠르게 전개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관계가 없다. 두려움의 장벽이 무너진 지금,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임금님은 벌거벗었다’라고 거리낌 없이 외칠 것이다. 또한 더욱 중요한 것은, 옷을 입었든 입지 않았든 간에 황제의 시대는 중동과 시리아 모두에서 끝났다고 외칠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그 문턱에 당도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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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연구공간 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