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www.foreignaffairs.com/articles/136399/michael-hardt-and-antonio-negri/the-fight-for-real-democracy-at-the-heart-of-occupy-wall-street?page=show
맨하탄 남부의 노숙 야영 시위대가 대의의 실패를 말하다
마이클 하트, 안토니오 네그리 씀 / 연구공간 L 옮김
2011년 10월 11일
‘월가를 점령하라’는 구호를 내건 시위가 많은 사람들과 공명하고 있다. 이는 이러한 일련의 시위들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는 경제적 부정의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더욱 중요하게는 이 시위들이 정치적 불만과 열망들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위가 남부 맨하탄에서 미국 전역의 도시와 마을들로 번져나감에 따라 기업의 탐욕과 경제적 부정의에 대한 분노가 실제적이고 또 깊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그러나 정치적 대의의 부족-혹은 실패-에 대한 항의 또한 최소한 동등한 정도의 중요성을 가진다. 이것은 어떤 정치인 혹은 어떤 정당이 무능하고 부패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물론 이 또한 문제이긴 하지만) 더 일반적으로 대의정치체제 자체가 적합한가 부적합한가의 문제이다. 이 저항 운동은 진정한 민주주의의 구성 과정으로 변형될 수 있을 것이며 또한 변형되어야만 한다.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의 정치적 측면은 우리가 이것을 지난 한해 동안의 또다른 “노숙야영시위”들과 함께 놓을 때 시야에 들어온다. 이 시위들은 출현 중인 투쟁의 순환을 형성한다. 많은 경우 어디에서 영향을 받았는가가 명백하다. ‘월가를 점령하라’는 스페인에서 있었던 주요 광장들에서의 노숙시위에서 영감을 얻었는데, 이 시위는 지난 봄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 점령을 따라 5월 15일에 시작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시위들에 위스콘신 주의회 의사당에서의 광범위한 시위들, 아테네 신타그마 광장 점령, 경제적 정의를 위해 벌였던 이스라엘의 텐트 야영시위와 같은 또다른 일련의 사건들을 덧붙여야 할 것이다. 이 다양한 시위들의 맥락은 물론 매우 다르며, 다른 곳에서 일어난 시위의 반복들이 결코 아니다. 그렇다기보다는 이 각각의 운동들이 몇 개의 공통적인 요소를 각자의 상황으로 번역해왔다고 할 수 있다.
타흐리르 광장에서는 당시의 정권이 어떤 의미에서도 시위대들을 대의할 수 없다는 사실과 노숙시위의 정치적 성격이 명백했다. “무바라크는 떠나야 한다”는 요구는 다른 모든 이슈들을 아우를만큼 충분히 강력한 것으로 드러났다. 뒤이어 일어난 마드리드의 푸에르타 델 솔, 바르셀로나의 까딸루냐 광장의 노숙시위들에서는 정치적 대의에 대한 비판이 더 복잡했다. 스페인에서의 시위들은 채무, 주택, 교육을 비롯한 광범위한 일련의 사회적․경제적 불만들을 제기했다. 그러나 시위 초기에 스페인 언론이 시위들의 지배적 정서로 규정한 “분노”는, 분명 이러한 이슈들을 다룰 능력이 없는 정치 체계를 겨냥하였다. 현재의 대의 체계가 민주주의인양 하는 가장에 맞서 시위대들은 “Democracia real ya."(지금 당장 진짜 민주주의를!)를 자신들의 중심적인 구호들 중 하나로 제기하였다.
그렇다면 ‘월가를 점령하라’는 이러한 정치적 요구들의 한 걸음 더 나아간 발전 혹은 변형으로 이해해야 한다. 물론 월가 점령 시위의 명백하고 분명한 메시지는 은행가와 금융 산업이 결코 우리를 대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월가에 이익이 되는 것은 국가(혹은 전 세계)에 분명 이익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더 심각한 대의의 실패는, 국민의 이해관계를 대변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은행과 채권자들을 분명하게 대변하는 정치인들과 정당들에게 돌려져야 한다. 이러한 인식은 순진해보이는, 기본적인 질문을 하게 한다. ‘민주주의는 폴리스, 즉 사회․경제적 삶 전체에 대한 인민의 지배가 아닌가?’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런데 정치가 경제적 이해와 금융의 이해에 부차적인 것이 된 것처럼 보인다.
월가 점령 시위의 정치적 성격을 주장함으로써 우리가 이 시위를 한낱 공화당과 민주당 사이의 싸움이라거나 오바마 정부의 운명이라는 관점 안에 던져넣으려는 것이 아니다. 이 운동이 계속되고 성장한다면 백악관이나 의회로 하여금 새로운 조치를 취하도록 압박하게 될 수도 있음은 물론이다. 또한 이것이 다음 대통령 선거 기간 동안 중요한 논쟁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오바마 정부와 조지 W. 부시 정부 모두 은행 긴급구제의 시나리오를 써내려간 장본인들이다. 시위들이 강조한 대의의 부재는 양 당에 모두 해당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금 당장 진짜 민주주의”에 대한 스페인인들의 요구는 긴급하고 도전적으로 들린다.
카이로와 텔 아비브에서 아테네, 매디슨, 마드리드, 이제 뉴욕에 이르기까지 이 다양한 노숙 시위들 모두가 현존하는 정치적 대의 구조에 대한 불만족을 표출한다면, 이들이 대안으로 내놓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들이 제안하는 “진짜 민주주의”는 무엇인가?
이에 대한 가장 명백한 단서들은 운동들 자체의 내적 조직화 안에, 특히 노숙시위들이 새로운 민주주의적 실천들을 실험하는 방식 안에 있다. 이 운동들은 우리가 “다중 형식”이라고 부르는 것을 따라 전개되어 왔으며 빈번한 의회와 참여적인 의사결정 구조로 특징지어진다. (또한 이러한 점에서 ‘월가를 점령하라’와 다른 많은 시위들이 적어도 1999년 시애틀과 2001년 제노바에까지 이어지는 지구화 항의 운동들에도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같은 소셜 미디어가 이 노숙시위에 채택된 것과 같은 방식으로 많은 것들이 이루어졌다. 물론 이러한 네트워크 도구들이 운동을 만들어낸 것은 아니지만 이들은 어떤 의미에서 운동 자체의 수평적 네트워크 구조와 민주적 실험들에 조응하기 때문에 편리한 도구가 되고 있다. 다시 말해 트위터는 사건을 알리는 데 뿐만 아니라 대규모 회의에서 구체적인 결정에 대한 견해를 실시간으로 투표하는 데에도 유용하다.
따라서 노숙시위가 지도자들이나 정치적 대표자들을 만들어내기를 기다리지 말라. 월가 점령에서 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같은 사람은 출현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좋건 나쁘건 간에(우리는 분명 여기에서 희망적인 발전을 발견하는 사람들 중 하나다) 지금 출현 중인 운동들의 순환은 대표자 없이 수평적인 참여적 구조들을 통해 스스로를 표현할 것이다. 민주주의적 조직화의 이러한 소규모 실험들이 실질적인 사회적 대안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기 까지는, 당연히 지금보다 훨씬 더 발전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실험들은 “진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이미 강력하게 표현하고 있다.
위기에 직면하고 그 위기가 현재의 정치 체계에 의해 관리되는 방식을 분명히 보면서 다양한 노숙시위 현장을 지키고 있는 젊은 사람들은 유례없이 성숙하게 다음과 같이 도전적인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지금껏 우리에게 주어졌던 민주주의가 경제 위기의 타격 앞에 비틀거리고, 다중의 의지와 이해를 주장하기에 무력하다면, 이제 그러한 형태의 민주주의를 낡은 것으로 간주해야 할 때가 온 것이 아닌가?
부유한 자들과 금융의 세력들이 미국 헌법을 비롯하여 소위 민주주의적이라고 하는 헌법들을 지배하기에 이르렀다면, 집단적 행복추구 기획을 새로이 시작하기 위한 길을 열어줄 수 있는 새로운 헌법의 형상들을 제안하고 구축하는 것이 가능하고 또 필요하지 않은가? 지중해와 유럽의 노숙시위들에서 이미 생동하고 있었던 이러한 생각과 요구들과 함께, 월가에서 시작해 미국 전역으로 번져나간 시위들은 새로운 민주주의의 구성 과정을 향한 욕구를 제시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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