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11년 2월 7일 marxist.com에 실린 프레드 웨스턴(Fred Weton)의 글이다. 무바라크 퇴진 이전에 쓰여진 글임에도 불구하고 이집트 혁명이 중동 및 북아프리카 전역에 미칠 파급력을 거의 정확하게 진단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일이 지났지만 읽어볼만한 글이다. 2월 15일 현재 바레인, 이란, 시리아, 예멘, 알제리 등지에서 반정부시위와 정부의 유화정책 및 탄압이 복잡하게 뒤얽혀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각국의 정치경제적 상황을 비교적 상세하게 그리고 있어 이러한 시위의 배경과 전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원문의 분량이 많은 관계로, 2회 혹은 3회에 걸쳐 게재할 예정이다. -연구공간 L
출처: http://www.marxist.com/egyptian-revolution-arab-world.htm
프레드 웨스턴(Fred Weston)/연구공간L 옮김
2011년 2월 7일 월요일
튀니지 봉기에 바로 뒤따라 일어난 이집트 혁명이 아랍 세계 전역에 충격파를 보냈다. 진지한 자본 전략가들 모두 이집트에서 전개된 사건의 “도미노 효과”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이러한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다.
벤 알리가 도피하지 않을 수 없었던 때로부터 한 주 전에 이코노미스트지는 벤 알리가 전복될 것이라거나, 혹은 그의 체제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것조차 부인했다. 그리고나서 벤 알리가 축출되고 나자, 이들은 자신들의 독자들에게 튀니지 혁명이 이집트와 같은 국가들로 번지지 않을 것(이집트는 “다르기” 때문이다)이라고 안심시킴으로써 자신들의 오류를 더 심각하게 만들었다. 며칠 후 이집트가 폭발했다.
제국주의적 권력들, 특히 미국은 자신들이 상황을 통제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지원 하에 있는 체제들은 안정적이라고 생각했다. 부르주아지들의 생각을 잘 보여주는 흥미로운 논평으로는 1월 28일자 파이낸셜 타임즈에 실린 한 기사를 들 수 있다. 부르주아들이 바로 최근까지만 해도 상황을 어떻게 보았는지를 다음의 글이 보여준다. “2007년까지 세계경제발전은 너무나 고요하고 예견 가능해서 때로 “매우 온건한” 시대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러나 이 목가적인 시기가 2008년 위기에 의해 갑자기 산산조각 났다. 중동에서의 이번 사건들은 훨씬 더 거대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기사는 다음과 같이 계속된다. “...투자자들은 이제 정치적 ․ 경제적 의미에서 점점 더 예측할 수 없는 세계에 살고 있다. 혹은 시장 용어로 말하면 중동이 현재 보여주고 있는 것은 ‘두꺼운 꼬리’*(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어서 그것이 갑자기 엄청난 충격을 주며 발생할 때까지 간과되는 사건들)의 힘이다.” 이 기사는 HSBC 중동 분석가인 사이먼 윌리엄스(Simon Williams)를 인용하고 있다. 따라서 “튀니지에서 일어난 일은 모든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중동에서의] 낡은 확실성들을 재검토하지 않을 수 없도록 했다.”
소위 부르주아 ‘전문가’들의 문제는 더 낮은 사회 층위에서, 억압받는 수백만의 노동자와 가난한 자들 사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탐지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이는, 이들이 자신들의 상아탑 속에서 살아가는 탓에 이 층위를 통상 간과하기 때문이다. 또한 외관상의 고요함이 심지어 몇 십년 동안 지속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은 현재의 상황이 늘상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는 저들이 극단적인 근시안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맑스주의의 선견지명
반면 ‘역사에 대한 장기적 전망’을 가지고 있고 모든 모순들을 고려하며 이 모순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를 생각하는 맑스주의는 우리로 하여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 도구였다. 위 인용문이 보여주는 이해의 결여와 다음의 글을 비교해보라. “반동적 사우디 전제정권은 이제 한 가닥 실에 연명하고 있다. 이 부패한 깡패는 점점 더 지지를 잃고 있으며 권력에 매달리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앨런 우즈(Alan Woods), 2007년 12월 6일, 「중동, 아나폴리스, 팔레스타인 문제」). 2007년이라는 시점에 주목하라!
그렇다면 2008년 4월 7일 우리가 발행한 「이집트의 4월 6일 - 다가올 더 큰 사건을 위한 총연습」이라는 장 듀발(Jean Duval)과 프레드 웨스턴(Fred Weston)의 글은 어떠한가. “무바라크 체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가장 의미심장한 것은 노동자들이 체제에 대한 두려움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혁명을 위한 모든 조건이 무르익고 있다.”
더욱 최근인 10월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집트에서 긴장은 끓는 점까지 다다르고 있다. [...] 혁명이 수면 바로 아래에까지 차올랐다.” (아미드 알리자데, 프레드릭 오스턴, 「이집트: 점점 더 난폭해지고 있는 폭풍」, 2010년 10월 28일)
우리는 경제위기 및 점증하는 사회적 양극화와 뒤얽힌 수십년에 걸친 압제가 미치는 효과를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현재의 혁명적 격변이 시작되기 훨씬 전에 이 모든 것을 쓸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중동 혁명의 전망을 제기했을 때, 우리를 맞이한 것은 혁명이 가능하다는 것을 부인하는 냉소주의와 회의주의의 귀가 찢어질 듯한 불협화음이었다. 이제 튀니지, 이집트에서 혁명이 터져나와 예멘, 요르단을 비롯한 많은 아랍 국가들에 혁명이 퍼지고 있다.
서구 제국주의자들은 이제 잃어버린 시간을 만회하려고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있다. 미 제국주의와 그들의 서구유럽 동맹국들의 반응은 무바라크에게 자제를 촉구하고 보다 더 민주적인 체제로의 이행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혁명이 점차 다른 나라들로 퍼져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썩어빠진 독재체제 전체가 무너질 것이 두려워 이러한 조치를 취한 것이다. 그러나 가능성으로만 있던 그러한 사태를 그들은 이제 두 눈으로 목격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세계 ‘지도자’들이 이러한 결과를 촉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한 편이 있다! 아랍 세계에서 핵심적 국가인 이집트가 만에 하나 튀니지와 같은 길을 가게 되어 무바라크가 결국 축출된다면, 그것은 벤 알리 퇴진을 낳은 사건들보다 훨씬 더 큰 충격을 미칠 것이다. 이집트 다음에는 요르단, 예멘, 알제리 등의 국가들 또한 모두 혁명적 격변기를 맞게 될 수 있다. 이것은 이 지역의 강력한 물질적 이해를 직접적으로 위협할 것이다.
따라서 오바마가 '이행'을 요구하고 있는 이면에서 다른 아랍의 지도자들이 무바라크로 하여금 저항하도록 부추겨왔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무바라크가 이 흐름을 저지할 수 있다면, 이 독재자들에게 아직 희망이 있다. 이스라엘 지배 계급 또한 이웃 집에 혁명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싶어 하지 않는다. 이들이 스스로를 중동에서 ‘유일하게 민주주의’적인 나라로 자임함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주변국의 독재체제가 무너지게 되는 것을 썩 보고싶어 하지는 않는 것 같다.
이들 지도자들이 걱정하는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튀니지와 이집트에 현존하는 것과 동일한 조건들이 모든 아랍 국가들 전체에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조건에서 아랍의 한 국가로부터 다른 국가로의 혁명의 전파는 모든 아랍 국가가 공통의 언어(아랍 국가들에 존재하는 다양한 소수자들과, 소수자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를 사용하고 공통의 문화유산과 종교(적어도 전인구의 90%가 믿는), 영토적 연속성(식민지배가 남긴 인위적 국경선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모두 자본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지배에 대한 저항이라는 동일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공통의 인식이 있다는 사실에 의해 더욱 용이해진다. 이 모든 것이 대중들의 마음에 강력한 힘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동일한 원인은 동일한 효과를 가져온다. 모든 지역에 혁명의 기운이 가득차 있다.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전개될 사건들의 속도는 부분적으로 다가오는 며칠과 몇 주 동안 이집트에서 일어나는 일에 달려있다. 현재의 운동이 단기간 안에 무바라크를 거꾸러뜨리는 데 실패한다면, 이 과정의 속도는 느려질 것이다. 무바라크가 곧 퇴진하게 되면, 다른 곳에서 이 과정은 속도를 높일 것이다. 결과는 살아있는 힘들의 투쟁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누구도 이 과정이 앞으로 얼마나 빨라지고 혹은 얼마나 느려질지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과정의 방향은 매우 분명하다. 조만간 무바라크는 물러나야 할 것이고 새로운 시기가 열릴 것이다. 그 때 이집트에서 계급투쟁은 높은 수준에까지 이를 것이다. 여기서 벗어날 방법은 없다. 그리고 이는 전 지역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아래에 서술한 간단한 상황 설명은 튀니지에 이은 이집트 혁명이 이미 미치고 있는 국제적 영향에 대한 암시이다.
요르단
요르단은 이집트의 길을 따를 1순위 후보이다. 점점 심각해지는 가난, 솟구치는 식료품 가격, 실업, 부패에 맞선 저항이 몇 주 동안 계속되고 있다. 인구 600만인 요르단에서 실업률은 공식적으로 14%이다. 인구의 70%가 30세 이하의 청년층이며 인구의 25%가 빈곤선 이하의 삶을 살고 있다.
수천명의 요르단 국민들이 수상 사임과 식료품 가격 인하를 요구하며 거리 시위에 쏟아져 나왔다. 이는 진행 중인 경제 위기의 결과이다. 요르단은 2011년 20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인플레이션은 6.1퍼센트까지 올랐다.
대중들을 달래려는 시도로 압둘라 국왕은 몇 가지 ‘개혁들’을, 특히 논란이 되고 있는 선거법에 대한 개혁을 약속했다. 수상도 쌀, 설탕, 축사 및 가정용 가스 같은 생필품과 연료에 대하여 5억 5천만 달러의 보조금 신설을 공표했다. 또한 공무원과 보안 요원에 대한 임금 인상도 공표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이로 인해 2월 1일 국왕 압둘라 2세는 사미르 리파이(Samir Rifai) 수상과 그의 내각 전체를 파면하고 마루프 바크히트(Maruf Bakhit)를 새로운 수상으로 임명하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새 수상에게 “진정한 정치 개혁에 착수하기 위한 실질적이고 신속하며 가시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새로운 정부를 구성할 것을 임무로 부과하겠다고도 덧붙였다. 국왕은 점점 불어나는 저항 운동에 영향을 미쳐서 이집트와 같은 각본으로 진행되는 것을 피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국왕은 즉각적인 민주주의적 개혁 프로그램을 약속하고 있다. 그러나 바크히트도 물러난 수상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정부에 몸 담았던 2007년 지방 및 의회 선거에서 그는 감독관 직을 맡았는데 그 선거에서 극심한 선거 사기가 일어났다.
2월 4일 금요일 암만Amman의 수상공관 바깥에서 열린 시위에 참여한 활동가들은 사실 이런 구호를 외쳤다. “정부는 물러가라” 이는 이들이 어떠한 미진한 조치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국민들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군주정의 생존이 위협받을 것이며 체제 전체가 패퇴할 수도 있다.
예멘
인구의 45%가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살아가고 있을 정도로 예멘에 광범위하게 퍼진 가난이 그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재의 저항운동의 근간에 있다. 예멘에서 도착한 최신 뉴스는 2월 3일 목요일에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지금까지 시위 중 최대 규모)이 알리 압둘라 살레(Ali Abdullah Saleh)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사나(Sanaa)의 거리를 행진했다는 것이다.
이집트와 마찬가지로 반혁명적 친 살레 시위대와 대규모의 반 살레 시위대 사이의 물리적 충돌이 있었고 경찰에 의해 제지되었다. 아덴 시 남쪽에서는 시위대를 해산시키는 데 최루가스와 실탄이 사용되었다. 이것이 이집트에서와 똑같은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는 혁명 운동의 결속력을 더욱 강화시킬 것이다.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은 지난 수요일에 자신이 2013년 선거에 나서지 않을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아들도 후보로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공표했다. 이 또한 쫓겨나기 전 벤 알리가 선언했던 것과 흡사하고 이집트의 무바라크의 행위와는 거의 복사한 것처럼 똑같다. 그는 물러날 것이라는 약속으로 대중들을 달래려고 시도하고 있는데, 이는 상황에 대한 통제권을 다시 장악하기 위해 대중들을 거리에서 몰아내려는 책략일 따름이다.
그는 또한 임금 인상과 감세, 대학 졸업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한 기금 마련, 사회보장범위의 확대, 다가오는 학기의 대학 수업료 면제 등을 공표했고 학비 감면을 [대학에] 요청했다.
이러한 약속들은 저항 운동이 점점 커져서 튀니지와 이집트의 경우처럼 되는 것을 막고자 하는 책략임이 분명하다. 시위대들은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목요일에 거리에 나선 2만 여명의 사람들은 “국민은 체제 변화를 원한다”, “부패 그만, 독재 그만”, “체제를 바꾸고 대통령은 물러나라”고 외쳤다.
알제리
튀니지에서 시위가 분출한 것과 거의 같은 시기인 12월 말에 알제리에서도 기본 식료품비의 인상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12월 30일에는 수도 알제(Algiers)의 한 구역에서 열악한 주거 조건에 항의하는 시위를 경찰이 진압하는 와중에 53명이 부상당하고 29명이 체포되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시위대의 반격이 얼마나 결연한 것이었는가는 53명의 부상자 중 52명이 보안요원들이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1월 초에 솟구치는 식료품비와 실업에 항의하는 폭동이 다시 일어났다. 체제는 거듭된 탄압 (5일에 걸친 거리 시위로 5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800명 이상이 부상당했다.)과 물가 인하, 석유, 설탕 및 생필품 가격 인하, 재고비축을 위한 수백만 톤의 밀 구입으로 응답했고, 밀가루 같은 필수 식료품에 대한 보조금 지원을 계속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그들은 대중들을 진정시키고 이제 막 전개되기 시작한 혁명의 고조를 멈추고 싶어한다. 그러나 애초에 반란을 낳은 근본적인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실업, 특히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청년 층의 실업률은 여전히 높다. 정부에 따르면 청년 실업률이 10%이지만, 더 현실적인 조사에 의하면 거의 25%에 육박한다.
언제든 분출 할 때만 기다리면서 분노가 표면 바로 아래에서 오랫동안 부글부글 끓어 왔다. 예컨대 1월 22일 집회를 금지한 법에 맞서 알제에서 열린 친 민주주의 시위에서 경찰에게 공격당한 몇몇 시위대가 부상을 당했다. 수백명이 집회 금지를 거부하고 거리에 나섰지만 중무장한 경찰병력들에 맞닥뜨려야 했다.
2월 1일에는 티지 우주(Tizi Ouzou) 대학의 지역학생조정위원회(CLE)가 제안한 시위에 수 천명이 참여했다. 집회 주최측에 따르면 1만 5천명이 시위에 참여했다. 의미심장하게도 몇몇 시위 참가자들은 튀니지 깃발을 흔들었는데, 이는 알제리에서 부테플리카(Bouteflika) 체제를 전복시킬 수 있는 운동이 일어나갈 바란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다. 슬로건들 중 하나는 “부트-알리 물러나라!”였는데, 이는 부테플리카와 벤 알리를 섞은 언어유희이다.
2월 3일 부테플리카 대통령은 알제리의 계엄상태가 “아주 가까운 시일 안에” 해제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계엄상태는 원래 1992년에 “테러리즘에 맞서 싸우기 위해” 시행된 이래로 지금까지 지속되어 왔다. 이 발표 후에 부테플리카는 내각 각료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할 수 있는 정책을 채택하도록 명백히 요구했고 또한 국영 TV와 라디오 방송이 모든 정당들의 관점을 방송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지금까지 이것들은 단지 약속으로 남아있다. 이는 시위의 계기를 잠재우기 위한 말들이고 “민주주의적 개혁”이 궤도에 들어섰다는 것을 믿게끔 만들려는 말들이다. 비상계엄이 해제되는 정확한 시점은 주어지지 않았다. 또한 일자리로 말할 것 같으면, 오늘날과 같은 경제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는지는 누구도 모른다.
새로운 행동의 날이 2월 12일로 잡혔다. 이와 같이 계속되는 시위는 알제리 국민들이 이웃 튀니지 국민들의 사례를 따라 중단없이 또다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모로코, 가자와 웨스트 뱅크, 시리아, 수단, 사우디 아라비아 등에 대한 분석 부분은 내일 게재 예정임.
...to be continued)
* 두꺼운 꼬리fat tail - 정규분포 상에서 값들의 분포가 평균 근처에서 두껍고 평균에서 멀어질수록 얇아지는 일반적인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좌우로 갈수록 두꺼워지는 분포 형태를 일컫는 말.